본문 바로가기
문학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를 읽고 책 리뷰

by Ariad 2023. 4. 14.
반응형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를 읽고 책 리뷰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 책 리뷰이다. 책의 줄거리는 난해하다. 하나의 서사로 묶이기보다 단편적인 동화가 곳곳에 흩뿌려진 느낌이다. 소설 속에는 '2월'이 등장한다. 평소 날짜를 세는 개념 정도로만 생각했던 '2월'이 의인화 되어 나타나는 점이 신선했다. 작가의 상상력처럼 12개월을 각각 사람으로 표현하면 어떠한 모습이 될까.

 

꽃병과 탁자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를 읽고 책 리뷰

 

정체를 알 수 없는 '2월'

 

소설 속에는 계절의 상징이자 조물주의 모습으로 '2월'이 등장한다. 소설 속에 그려진 것처럼 '2월'은 실제로 겨울과 봄 사이에 존재하는 달이다. 그러나 겨울은 끝나지 않고 2월은 계속된다. 소설 속 사람들은 눈, 추위, 얼음과 같은 겨울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조물주를 상징되는 2월은 그것을 끝내려하지 않는다. 거기다 2월은 하늘에서 날 수 있는 모든 것을 금지한다. 열기구, 비행기, 연과 같은 모든 것을. 이러한 2월의 모습은 단편적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자의 모습으로 읽을 수 있다. 거기다가 그는 아이들을 납치하기까지 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2월'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쉽다. 얼어있고, 딱딱한 겨울의 이미지와 자유로 상징되는 날아다니는 것들을 금지하는 것, 거기다 순수한 아이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까지. 마치 2월은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 순수함, 봄의 생명력 등을 앗아가는 악당으로 읽을 여지를 준다. 

 

새디어스 비앙카 그리고 아이들

 

이와 반대로 새디어스는 2월에게 맞서는 영웅, 투사와 같은 선으로 읽을 수 있다. 자신의 딸이 납치 당하자 새디어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2월에게 맞서려고 한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하고, 부인마저 잃게 된다. 결국 그는 2월을 찾아 직접 하늘로 올라간다. 그리고 거기서 2월을 칼로 찌르며 복수에 성공한다. 이야기 구조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모습은 분열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새디어스의 딸 비앙카는 2월에게 납치 당하고, 죽음을 당하지만, 소설 후반부에는 유령으로 나타난다. 그녀는 스스로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죽지 않았음을 믿는 것은 아이들 밖에 없다. 이는 환상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비앙카는 결국 소설 속 인물로 '환상'이다. 그러한 점에서 '유령'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상과 허구를 누구보다 잘 믿을 수 있는 건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인 것이다.

 

2월을 처음으로 찾아간 새디어스는 자신이 찾은 2월이 실제 2월이 아닌 목수에 불과한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 평범한 그 목수에게 2월이라고 이름을 지어버린 것이다. 그 목수의 집에서 기절했다 깨어난 그는 갑자기 세상에 봄이 왔다며 즐거워한다. 이처럼 소설 중간 중간 인물들은 일관성을 잃고 분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서사가 매끄럽게 이어진다기 보다는 파편적이고, 굵직한 스토리 구조보다는 장면을 묘사하는 탁월한 은유에 더 눈이 가는 소설이다.

 

꽃병야경
꿀과 연기 냄새가 나는 소녀를 읽고 책 리뷰

 

액자식 구성의 이야기

 

이야기 구조상 인상 깊었던 것은 스토리 후반에 가서였다. 이분법적이고 단편적으로 악으로 규정할 수 있었던 2월의 정체가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 모호해져갔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슬퍼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곁에는 항상 '꿀과 연기냄새가 나는 소녀'가 존재한다. 어쩌면 이 소설은 액자식 구조가 뒤섞여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소설 속 '새디어스'라는 인물이 존재하는 이야기와 그 '새디어스'가 존재하는 세상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작가의 세상이 또 한 차원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월은 신, 조물주라는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이야기를 짓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을 거 같았다. 

 

2월은 새디어스를 비극적으로, 냄새나는 소녀는 새디어스를 행복한 사람으로 쓴다. 결국 '환상, 허구'라는 이야기의 측면에서 2월과 소녀는 각각 다른 새디어스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의 이야기에 대한 갈등, 분열로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이야기 속 내래티브가 워낙 뒤섞여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고 월과 소녀가 결국 작가로 살고 있는 2월과 그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했다. 중간 중간 2월의 부인이 2월에 대해 얘기한 부분도 있다. 부인은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이, 그리고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이 싫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2월은 무언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었나보다. 그러나 어딘가 마음이 아프고 슬픈 그는 아름다운 이야기 보다는 슬픔, 전쟁, 비탄이 있는 이야기를 쓴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소설이 다양한 내래티브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거 같았다. 크게는 문학의 '환상'이란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분위기 자체가 환상적이기도 하고 소설을 쓰는 것 자체가 환상과 허구를 창조하는 작업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느꼈다. 중간에 '슬픔의 기간을 치유 하려는 시도로 판타지 세계를 창조한 예술가 목록'이라는 페이지가 나오는데, 이 페이지에는 다양하고 유명한 작가들의 이름이 나온다. 소설 속 환상적인 분위기나 소설이 원래는 환상이라는 점, 그리고 그 환상을 만드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책 속에 담는 점은 주제와 일맥 상통하는 듯 하다. 무언가 고통과 슬픔 비탄을 겪으면서 그것에 거리를 두고 치유하는 작업으로 이야기를 창조하는, 환상과 허구를 만드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기도 하다.

 

2월은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스스로 새드 엔딩을 맞이한다. 그는 소녀에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결국 소녀가 이야기를 아름답게 끝맺는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