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소개
한나 아렌트는 독일 태생의 철학자로 히틀러 정권 출범 후 반 나치 운동을 벌이다 1941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녀는 미국의 잡지 <뉴오커> 특파원 자격으로 독일의 나치 친위 장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관하여 이 재판의 기록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남기면서 '악의 평범성'의 개념을 처음 이야기하였다. 즉, 아이히만의 범죄는 그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유대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아이히만의 정신과 검진 결과는 '정상'이었다. 또한 그는 누구나 일상에서 만나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으며, 심지어 가정적인 사람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성실함, 가정적인 모습이 어쩌면 비극의 요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는 히틀러 직속에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는 총 책임자 힘러의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였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월급을 받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더 양심에 찔린다고 했다.
이처럼 상사의 지시라면 그게 아무리 도덕적으로 부당한 것이라 한들 성실히 수행하는 아이히만의 모습에서 '악의 평범성'이 탄생한다. 윤리적 기준 없이 성실하게, 모범적으로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 때로는 유대인 학살과 같은 인류 역사의 비극적 범죄의 시작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없는 '성실함'은 유대인들에겐 '악'이었다. 이를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였으며, 이러한 악의 평범성은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다며 우려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보고 느낀 '생각'이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생각'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건 이렇듯 근대적 의미로써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능력이다. 그러나 영상 속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생각'은 데카르트의 '생각'과는 결이 많이 달라 보인다. 그 '생각'은 오히려 자신의 합리성과 이성을 의심해보는 성찰 능력,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민감해지는 감수성에 가까운 그 무엇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흔히 '합리적인 이성'이라고 여기는 '생각'은 사실 외부적으로부터 수동적으로 받아들인 관념에 가깝다. 그 관념들에는 어떠한 주체성도 성찰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은 이러한 성찰 능력의 부족으로부터 시작된다. 영상 속 '아이히만'은 매우 성실하고 근면한 인간이었으며,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충실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재판에서도 그는 자신은 어떠한 악의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단지 주어진 명령에만 충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명령에 충실한 것이 가장 합리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충실한 이행이 불러 온 결과는 비참했다. 수많은 유대인들이 도살장의 짐승마냥 학살 당했던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듯 아무런 고찰과 성찰 없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명령과 법칙에 충실한 인간이 빚게 되는 악을 '악의 평범성'이라 불렀으며, 한나 아렌트의 '생각'이란 외부적 법칙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닌, 스스로 재고하고 성찰할 줄 아는 주체적 사고 능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이 성찰 능력의 밑바탕에는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줄 아는 일종의 감수성이 존재한다. 만약 아이히만이 학살 당하는 유대인을 자신의 가족처럼 생각할 줄 아는 감수성을 지녔다면, 이러한 참사가 이렇게 단순하고 아무 생각없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각 이전에 인간에 내재하는 맹자의 '양지'설
맹자는 이 감수성을 두고 가르치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본래 알고 있는 '양지'라고 이름 붙였으며 맹자에 의하면 아이히만은 이 '양지' 능력이 가려진 것이고 그것은 아마 외부적 법칙을 고찰없이 수동적이게 받아 들이는 태도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생각할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다. 철저히 '근면성실'해져야만 남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을 수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생각' '타인에 대한 감수성'은 어쩌면 사치로 비추어진다. 또 그런 시대일 수록 한나 아렌트가 정의한 '악의 평범성'이 고개를 들기 쉬워질 것이다. 곳곳에서 고개를 드는 그 평범한 악을 방치할 지, 좀 더 경계하고 성찰하는 자세를 통해 '양지'의 능력을 키워갈 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지만, 아이히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생각하지 않는 능력'이 불러오는 결과가 참담하다는 건 기억할 필요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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