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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데리다의 철학 서구 형이상학 해체와 타자

by Ariad 2023.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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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미지
데리다의 서구 형이상학 해체와 타자

 

데리다의 서구 형이상학 해체

 

데리다의 대표적 철학 작업은 '해체'로 이는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형이상학적 사고에 대한 성찰과 비판을 뜻한다. 서구의 형이상학적 사고는 이성과 감성, 남성과 여성, 영혼과 육체 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사고이며, 그러한 인분법적 사고로부터 우열과 열등이라는 위계적 질서가 부여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서구의 형이상학적 믿음 중 하나는 '말'은 현전성을 가졌기에 우월하며 '글'은 그것을 쓰는 사람, 즉 발화자로부터 멀어져 있으므로 현전성이 삭제되고 진실과 멀어진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데리다는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하며, 발화자의 현전을 전제로 한 진실의 담지자로서의 '말'은 허구적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이해해볼 수 있는데, 사진은 한 때 있는 그대로의 객관적 사실을 재현한다는 의미에서 '현전성'을 지닌 매체로 여겨졌다. 그러나 사진은 찍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 합성과 리터치로 인해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전성을 잃는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 된 사진의 현전성은 일종의 허상이자 이데올로기다.

 

이처럼 순수한 현전성, 객관적 실체가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형이상학적 믿음은 서구 문명과 철학에 전통적인 기반이었고, 데리다는 이를 해체하며 실체로 존재하는 이데아, '현전성은 없으며 현전성을 둘러싼 은유와 수사만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한 실체 없는 목소리를 둘러싼 은유는 과잉을 일으킬 수 있는데, 데리다는 이러한 과잉, 인플레이션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실체 없는 보편적 목소리가 마주해야 하는 운명으로 여겼다. 이러한 운명은 가치 자체가 존재하는 한 것인지와 같은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화분
데리다의 서구 형이상학 해체와 타자

 

현실, 이미 오염된 채 전해지는

 

현실을 담아내는 목소리의 인위성, 작위성을 주장한 데리다의 해체 작업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가 현실을 담아내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현실 그 자체가 인위적인 것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 들이는 현재라는 것은 가공을 거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즉 우리의 현실은 순수하게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언제나 불순한 것들에 의해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헤겔의 변증법적 입장과 유사한데, 헤겔은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아닌 다른 타자와 섞이면서 그 존재성을 확인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데리다의 타자

 

이때 타자는 존재를 존재하게 하고 고양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데리다는 존재를 불순하게 하면서 동시에 존재하게 하는 타자를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인정한다. 데리다에게 '타자'란 이미 존재를 포함하고 있는 것, 존재와 같은 선상에 목격되는 그 무엇이다.

 

또한 데리다는 정의롭지 못한 정의의 구현 방식을 비판한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는 '정의'란 '법'에 가깝다. 그러나 '법'은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면이 있다. 개별자들의 독특성을 삭제하고 보편적인 논리를 강요하므로 억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타자에게 무언가를 강압적으로 요구한다는 그 전제 자체가 법을 정의롭지 못한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데리다에게 '정의'란 강압적이지 않게 이루어지는 그 무엇이다. 강압적이지 않게 타자를 관용하고 환대할 때, 정의는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무 숲
데리다의 서구 형이상학 해체와 타자

 

그리고 의문

 

1. 데리다에 의하면 정도만 다를 뿐 사진도 스포츠 중계나 대담과 같은 방송도 어느정도 인위성과 작위성을 띄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널리즘이란 무엇일까? 사실을 보도한다고 하지만 결국 기자나 방송국의 주관에 치우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건에 대한 윤리적, 정치적 판단을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2. 바야흐로 유튜브의 세상, 콘텐츠의 세상이다. 소설, 영화, 드라마, 웹툰 등등은 모두 픽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즉 사실 같은 허구라는 것이다. 이처럼 그 어느때보다 허구가 현실과 가까운 지금, 우리의 현실은 과연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인가? 아니면 데리다의 말대로 이미 한 번 오염된 채 나에게 전해지는 것일까? 흔히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그 안경이 최대한 많은 대다수가 쓴 보편적인 안경인지, 아니면 나 혼자만 쓴 안경인지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약과 파란약 논쟁마냥 머리가 아프지만, 또 그러면서도 언제나 현실은 단순하기 짝이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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