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전을 읽고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사랑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사랑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어선 인류 최고의 서사인 거 같다.
운영전의 특징 1. 소소한 연애담
전체적으로 비극적인 운영전에서 그래도 소소하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몇개 있었다. 바로 운영을 만나기 위해 서궁 담을 넘는 김진사에게 김진사의 하인인 특이가 털옷과 가죽 버선을 전해주는데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운영은 "진사님이 입으니 빛남이 낯과 같았습니다"라고 한다. 흔히 '콩깍지'가 씌인 운영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슬쩍 웃음이 났었다.
또 서로를 그리며 전하는 편지와 시는 그 절절함이 말로 다 할수 없었다. 서로를 그리는 마음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는 편지 내용은 사랑에 빠진 남녀가 보여주는 애틋함과 그리움을 잘 보여준다. 오늘날의 사랑 노래 가사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운영전에서 또 인상이 깊었던 것은 운영의 사랑을 감싸고 이해해주는 다른 궁녀들의 존재였다. 다른 염정 소서로가는 다르게 운영전에선 운영이 자신의 감정을 친구인 자란에게 솔직히 털어 놓으며 다른 궁녀들 또한 운영과 김진사가 잘 만날 수 있도록 소격서동으로 빨래를 간다. 하다못해 운영과 김진사 사이의 일을 알게된 안평대군이 운영을 죽이려 할 때도 궁녀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운영을 구해내기도 한다.
조선사회에서는 용인될 수 없는 운영과 김진사의 사랑을 이해해주고 그들의 조력자로 나서는 궁녀들의 존재는 다른 염정소설과는 차별화된 운영전만의 특색인 듯 하며 운영과 김진사를 신분을 뛰어넘어 사람 대 사람으로 보는 작가의 시선을 알 수 있었다.
운영전의 특징 2. 당대의 사랑과 연애의 모습을 잘 보여줌
운영전을 읽으며 강하게 느꼈던 점은 현대 우리가 지닌 자유롭게 사랑할 권리를 그 당시 조선 여성들에겐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교 질서가 팽배했고 특히나 궁녀들은 어린 나이에 입궁하면 왕의 여자로 자유롭고 정상적인 연애가 불가능했다. 그러한 신분질서의 굴레에서 운영과 김진사는 서로를 더 절절하게 그리게 되었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눈물 지으며 소설의 분위기를 더 비극적으로 만들었다.
어찌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랑의 감정이 유교사회 아래 억압받았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본능을 사회 질서가 억누른다는 점에서 반감이 들었다. 한편으론 그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꿋꿋하게 지켜 나가는 운영과 김진사의 모습이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운영과 김진사가 태어났으면 실컷 사랑했을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어쩜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신분제약이라는 커다란 벽과 불리한 조건에도 서로를 사랑해주고 죽음까지 각오하는 둘의 모습은 쉬운 만남과 헤어짐 조건결혼이 팽배해져가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게끔 한다.
운영전 vs 춘향전
운영전은 '춘향전'과 비교했을 때 그 특색이 더욱 두드러진다. 둘 다 지고지순한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렸으나 분위기나 결말에 있어서 극과 극을 이룬다 할 수 있다. 춘향전은 판소리계 소설이기 때문에 풍자와 말장난이 섞여 있어 다소 밝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운영전은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시나 편지가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절절함을 자아내어 소설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킨다고 할 수 있다.
또 권선징악으로 해피엔딩을 맞는 춘향전과 다르게 운영전은 죽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한다는 비극적 결말로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뛰어넘을 수 없는 현실적인 벽이 존재한다는 점, 또 죽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한다는 건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운영전의 또 다른 이름 풀이
운영전의 또 다른 이름은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방울'이다. 김진사의 붓의 먹물이 옆에서 먹을 갈던 운영의 손등에 떨어진다. 둘은 눈이 마주치고, 그렇게 사랑이 시작된다. 시작부터 로맨틱한 운영전은 중간중간에 삽입된 시와 편지를 통해 낭만성을 더해간다. 이러한 운영전의 변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여 이미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현대나 고전에 남녀상열지사는 인간에게 있어 큰 대사다. 사랑을 하는 남녀는 아름답고 사랑을 하는 남녀는 그 어느때보다 정열적이기 때문이다. 신분에 상관없이 주변에 제약없이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써 사랑한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따분한걸로 치부하는 요즘, 그들의 순순한 사랑이 유독 더 아름답고 부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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