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시 해석 및 감상 양반에 대한 저항: 동짓달 기나긴 밤을, 청산리 벽계수야, 소세양과의 이별을 맞이하며
지난 글 황진이의 시 해석 및 감상 이별을 주제로 한 글을 이어서 <동짓달 기나긴 밤을> 풀이하고, 다음으로 양반에 대한 저항을 주제로 한 시 <청산리 벽계수야>, <소세양과의 이별을 맞이하며>를 해석해 보겠습니다.
이별을 주제로 한 시 (3) 동짓달 기나긴 밤을
어져 내일이야~와 마찬가지로 황진이의 시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밤'이라는 어둡지만 환상적인 시간적 배경에, '봄바람'이라는 낭만적 소재가 들어가 작품이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긴 밤을 잘라서 이불 속에 간직했다가, 님이 오시면 펼쳐 놓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창의적이다. 그만큼 님과 긴 시간을 함께 하고픈,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잘 담겨진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리서리', '굽이굽이'등의 의태어 사용으로 시조가 한층 더 재밌게 느껴졌다. 또한 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으면 이렇게 애절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대 최고의 기녀였던 그녀도 사랑 앞에서는 끊임없이 애절하고 약해질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이었겠구나 생각이 들게 하는 시조다.
이처럼 황진이는 '기녀'라는 신분의 제약으로 인해 불안정한 사랑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에 놓여있었다. 따라서 그녀가 '님'들과 나누는 정분은 영원히 기약할 수 없는 정이었으며, 그러한 이별과 그리움의 깊이를 그녀는 '시조'라는 예술적 형식으로 승화하였다. 그녀의 시조를 보면 그녀가 사랑 앞에서 흔들리고, 후회하고, 혼란스러워 했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 '황진이'라는 인물을 떠올렸을 때 왠지 모르게 사랑과 이별에 있어 도도할 거 같고 지금식으로 말해 쿨할 것 같지만 막상 시를 들여다보면 그 마음이 너무나 절절해 마음에 와닿는다. 그녀의 그러한 사람에 대한 진심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조를 낳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황진이의 시 해석 및 감상 2. 양반계층에 대한 저항을 다룬 시
1. 청산리 벽계수야
이 시조와 관련된 일화는 유명하다. 종실 벽계수가 황진이의 미모와 재주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만나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달을 통해 꼼수를 써 황진이를 유혹하려고 한다. 그러나 황진이는 벽계수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이 시조를 읊고, 벽계수는 황진이가 읊조리는 위의 시조를 듣고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 떨어지게 된다. 이때 황진이는 벽계수를 두고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말하고 가버리자 벽계수가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고 한다. 이 시에서 '청산 속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은 시냇물 자체이기도 하지만, 벽계수를 지칭한다. 즉 벽계수의 가려는 발걸음을 붙잡기 위해 빨리 흘러가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로 비유되는 자신의 품에서 쉬어가기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조 자체는 유혹적이고 낭만적이지만 관련된 일화와 함께 들으면 이는 단지 벽계수라는 종실을 놀리기 위한 황진이의 재치있는 조롱에 불과하다. 이처럼 황진이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고, 자신을 의도적으로 유혹하고 손에 쥐려는 남성 양반을 조롱하면서 양반계층의 위선과 허위를 통쾌하게 폭로하고 있다.
2. 소세양과의 이별을 맞이하며
이러한 황진이의 기조는 소세양과의 일화에도 잘 나타난다. 소세양은 소싯적 "여색에 미혹되면 남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특히나 황진이의 명성을 듣고는 친구들에게 그녀와 한 달을 지낸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 했다고 한다. 마침내 한 달을 산 후 떠나려 하는 소세양에게 황진이는 위와 같은 시를 읊어 그를 붙잡았고, 그는 스스로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이 시조 역시 내용만 두고 보면 낭만스럽기 그지 없다. '달빛'으로 대표되는 낭만적 분위기 아래에서 '들국화'가 노랗게 피고 술잔은 오고감이 끝이없다. 비파소리, 매화향기는 '이별'과 관련되어 낭만적이나 씁쓸한 느낌을 준다. 이별하고 나면 자신의 정이 길고 긴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이라는 마지막 구절은 그녀가 소세양과 이별하면서 느낀 아픔을 절절히 표현해준다. 그러나 소세양이 황진이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는 점에서 황진이 역시 진심으로 소세양을 연모하여 이 시를 읊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쩌면 황진이 역시 소세양과 같이 내기를 하는 마음으로 시를 창작하여 소세양 스스로가 자신을 '짐승'이라고 칭하는 모습을 보며 통쾌해 했을지 모른다.
3. 별김경원
이 시조는 황진이가 김경원과 이별하면서 지은 시다. 첫구와 두번째 구에서 김경원과의 관계에 있어 좋은 짝임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자신과 김경원의 '생사'에 접근하면서 긴장감과 위기감을 준다. 두번째 구에서 이러한 긴장감과 위기감은 세번째 구의 불안한 정서로 이어지다 "내 아니 저버렸는데"에서 증폭된다. 그 불안함의 이유는 망설임 없이 터져 나온다. '그대'가 '한량'이기에 발생하는 두려움인 것이다. 이처럼 김경원을 두고 직접적으로 '한량'이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김경원에 대한 황진이의 불신이 느껴진다. 이는 믿음으로 엮인 끈끈하고 진정성 있는 사랑이라기 보다, 서로 믿지 못하며 불신하는 불안정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벽계수, 소세양, 김경원이라는 구체적인 양반 남성이 등장하는 시에서는 모두 남성 양반에 대한 조롱, 비판이 드러나게 된다. '양반 남성'이라는 조선시대 최고의 기득권층에게 천한 신분의 기녀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당당히 드러내며 그들의 허위와 가식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위 세 작품은 그러한 황진이의 당당한 태도가 드러나며, 동시에 그들과 나누었던 황진이의 사랑이 얼마나 불안정 했는가를 보여준다. 어쩌면 황진이가 그토록 남성 양반들을 조롱했던 것은 그들이 그녀를 한 사람의 여자로 진심으로 대해줬다기 보다, 유명한 기녀를 자신이 소유함으로써 얻는 남성적 자부심과 이기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