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함석헌의 시간관과 자유의 내면 정치학

Ariad 2023. 4. 14.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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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시간관과 자유의 내면 정치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함석헌의 시간관은 그리스도교적 시간관과 진화론이 결합한 흥미로운 성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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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시간관과 자유의 내면 정치학

 

함석헌의 시간관

 

함석헌의 시간관은 신의 자유의지를 전제한 그리스도교적 시간관과 진화론이 결합한 결과로 흥미로운 성격을 가진다. 현재 시점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열려 있으면서도 회상과 희망에 의해 새로운 창조적 활동이 시작되는 결정적 기점이다. 현재 시점은 수평적으로는 과거에서 오는 회상과 미래에서 오는 희망이 집중하는 시간이고, 수직적으로는 영원자와의 상승, 하강(초월과 은총)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중심이다. 이러한 십자 좌표 아래에 피조물의 진화사가 구성된다. 현재 시점까지 전개된 우주사는, 신의 시야 안에 있던 무수한 가능성들 가운데 그의 '자유의지'가 선택한 창발적 진화사다. 따라서 다른 방식의 진화가 가능했었다. 마찬가지로 현재 시점 이후에 전개될 진화의 방식도 무수한 가능성들로 열려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신의 섭리는 인간의 내면화에 의한 자유의 완성이라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문맥에서 현재는 언제나 향상과 향하의 가능성을 지녔으며 그렇기에 현재는 "이거 아니면 저거"인 불안을 운명으로 인수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가진다. 현재는 미래의 희망으로 나아가느냐 화석화된 과거로 절망하느냐의 '물음'이 운명적으로 일어나는 시점이다. 따라서 주체성은 언제나 '문제' 앞에 직면함으로써 구성되는 것이지 문화세계가 규정하는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 구성되지 않는다. 묻는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로 분열되어 있는 현재의 중심에 섰을 때 일어난다. 

 

시간성은 현재의 중심에서 미래로부터 오는 '의미'를 지향하고 굳어버린 과거를 부정하는 구조를 갖는다. 주체는 시간성에 근거할 때 퇴색되지 않는 주체성으로 회복된다. 이 현재는 문명의 발전이 갖는 과거 그리고 이것의 양적 연장에 지나지 않는 미래와 '절연'하는 순간이다. 이 순간이 "생명을 꼭 붙잡고 있는" 그래서 생명을 긍정하고 살게 하는 현재이다. 긍정은 현재와 영원성이 직결되는 구조를 갖는다. 그러므로 "참 생활은 현재에만 있고, 현재는 찰나에만 있는 것이라면, 그 현재는 영원한 현재다."

 

이 영원한 현재는 문화적 자아 정체성을 탈각한 '맨 사람'을 완성하는 원리이다. 개체에서 '자유정신'이 자각되면 이 개체의 고립성과 대립성은 영원자의 은총에 힘입어 스스로 '폭파'된다. 이 의미세계가 모든 대립의 초극의 지경이다. "원수는 이웃이 되고,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한 마디가 되고, 죄는 없어지고, 심판은 구원이 되고, 일체는 산 하나가 돼버린"이 하늘나라가 지금 여기에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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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의 시간관과 자유의 내면 정치학

 

자유와 내면의 정치학

 

3.1 운동의 경험에서 비로소 민중이 세계사의 무대에 정치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을 보았던 함석헌은 형이상학적 전체성에 대한 인식을 주체의 본질, 즉 주체성으로 보고 그것을 민주주의의 근본조건으로 이해한다. 전체성과 주체성은 현상적으로는 정치 문화적 의미를 갖지만 본질적으로는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갖는다. 함석헌이 "민주주의는 사실은 종교"라고 보고 "종교의 세속화"를 주장한 핵심적 의미는 그것이다.

 

산업화된 시대의 흐름에서 인류는 돈과 이욕에 기대어 외면적으로는 자유를 얻었다. 이제 자유의식의 발전 방향은 외적으로 돈을 극복하고 내적으로는 우주적 전체성에 접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면적 자유의 정치학의 역사적 위치는 부르주아적 자유를 더 심화, 확대해서 전진시키는데 있으며 그 의의는 '돈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점에 있다.

 

이처럼 진정한 내면적, 정치학적 주체성 획득을 위한 최후의 싸움은 역사의 산물인 자본주의와 형식상의 민주주의를 돌파하여 모든 개체들이 씨알의 생명성을 드러내는 시대를 지향한다. 함석헌은 '서민' '민중' '민초' 등 모든 민자가 들어가는 단어를 집단주의의 산물로 규정하고 민중을 씨알로 명명한다. 이는 '민중'은 선동의 객체나 주체가 될 때 씨알이 아닌 군중주의적 시민이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씨알로서의 민중은 정치적 자주성과 우주적 인간성(씨알)에 대해 자각적으로 사유하는 주체다. 이때 주체는 형식적인 민주주의 행동 표준으로 자리잡은 '이욕주의'의 왕관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개체성을 실현한다.

 

'작 위에 주인이란 것이 없고 자기야말로 자기의 주인인 것을 알게 되어 빈틈없이 충만되어 있다는 우주적 심정과 우주적 비전을 가져야 한다. 이와 같은 함석헌의 씨알민주주의는 우주사적 전망과 사명을 지닌다. 씨알민주주의의 이념에서 그는 모든 위계적 구조를 탈각하고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을 지향하는 사랑의 본질을 이해한다. 이러한 정치학은 계급과 노동의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으로 확산된다. 그 정치학은 외면성을 위해 내면성을 희생하지 않고 내면성을 위해 외면성을 희생하지 않는다. 이 정치학 안에서 주체는 외면적으로는 각자가 처한 노동자 농민 등의 사회적 규정을 갖지만 내면적으로는 '우리'를 생각하는 평등한 주체이자 우주 생명 원리의 흐름에 열려있는 '씨알'이다. 우주적 생명에는 사회적 이름이 없으며 그러므로 도래하는 민중의 시대는 민중이란 이름도 지워진 무명인사들의 세계가 될 것이다. 

 

함석헌의 시간관에 의하면 "참 생활은 현재에만 있고, 현재는 찰나에만 있는 것이라면, 그 현재는 영원한 현재다" 이 영원한 현재는 문화적 자아 정체성을 탈각한 '맨 사람'을 완성하는 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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